[삶의 뜨락에서] 교감
어떤 사람이 절룩거리며 병원 로비에 들어섰습니다. 안내원이 다가가서 “다리가 아프시군요” 라고 하니 이 사람이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안내원은 그 사람을 정형외과 의사에게 안내했고 정형외과 의사는 발을 본 후 X-ray를 찍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이상이 안 나타나자 MRI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이상이 없자 신경외과 의사에게 보냈습니다. 신경외과 의사는 진찰한 후 머리의 CT를 찍고 MRI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상을 발견할 수 없자 신경내과 의사에게 보냈습니다. 신경내과 의사가 검사한 후 뇌파 사진을 찍고 여러 가지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안과의사에게 보냈습니다. 안과의사는 다시 안저 검사를 하고 MRI를 찍고 처방을 지어 주었습니다. 며칠 후 이 환자가 다른 일로 병원에 들어왔습니다. 안내원이 다가가서 “이제는 절지 않으시는군요. 약의 효과가 있지요” 라고 하니까 환자가 작은 소리로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요. 구두에 삐져나온 못을 빼버린 것뿐이요” 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환자와 의사의 의견이 소통되지 않은 것뿐입니다. 오래전 외래에 노인 한 분이 오셨습니다. 환자를 앞에 앉게 하고는 “아저씨 어떻게 오셨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환자는 씩 웃더니 “젊은 의사 선생, 내가 돈을 내고 왔으니 의사 선생이 맞춰야지요. 내가 왜 여기 왔겠소” 라고 말을 했습니다. “네. 아저씨. 아저씨 몸이 편치 않으시죠. 얼굴이나 손발은 아니고 속병인 것 같은데 한번 만져는 보아야 알 것 같군요” 하고는 진찰대에 눕히고는 여기저기 만져 보고 눌러 보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명치 끝을 눌러보니 환자가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찰을 마치고 “소화가 잘 안 되는군요” 했더니 “그래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제는 문제가 좀 해결이 된 듯하여 “속이 쓰리십니까, 아니면 소화가 안 되십니까. 내 생각으로는 속이 쓰리신 것 같은데요” 라고 이야기를 끌어나가고 처방전을 주고 약이 듣지 않으면 위내시경을 해보자고 하여 보낸 일이 있습니다. 얼마 전 심장내과 선생님에게 진찰을 받으러 간 일이 있습니다. 한 20분을 기다리다가 의사 선생님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의사는 나에게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하고 나의 말문을 막았습니다. 그곳은 의사의 사무실이었고 나는 그가 하라는 대로만 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진찰하면서 그가 묻는 말에 대답하였고, 나는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만 그 의사는 환자의 접근 방법이 이상했습니다. 물론 의사 사무실에 와서 자기의 조상 이야기부터 집안의 가정사를 늘어놓아 시간을 끄는 환자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그랬겠지만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라는 말은 검사나 경찰들이 쓰는 말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요새는 의료보험에서 진료비를 적게 주니까 10분 안에 환자를 한 사람 진료해야지 옛날처럼 환자가 자기의 팔자타령까지 다 들어주다가는 병원을 운영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국의 이름난 소아과 의사나 내과 의사는 하루에 150~ 250명을 진료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환자 한명당 3~4분 이상을 끌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환자를 보기 전 검사부터 시키고 검사결과에 따라 처방전 4번, 5번으로 불러 주어야 병원이 운영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구두에 못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 X-Ray, MRI를 하고 환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건 어쩐지 잘못된 것 같네요. 이용해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교감 의사 선생님 신경내과 의사 정형외과 의사